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신 전쟁 (문단 편집) === 고슈가시오(甲州柏尾) 전투[* 전투가 벌어진 가쓰누마 지역의 이름을 따서 고슈 가쓰누마 전투라고도 부른다] === || [[파일:external/pbs.twimg.com/B_Zv8FMUgAIT_C7.jpg|width=100%]] || || '''포위당한 곤도 이사미''' || 에도로 후퇴한 신센구미에게 고후(甲府)분지에 위치한 고후성(甲府城)으로 입성하여 신정부군의 동진을 막으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이에 국장인 [[곤도 이사미]]는 오쿠보 쓰요시(大久保剛)를 자칭하고, 부장인 [[히지카타 토시조]]는 나이토 하야토(内藤隼人)로 이름을 바꾸고, 신센구미를 갑양진무대(甲陽鎮撫隊)[* 진무(鎮撫)란 시위진압을 의미하는 단어로, 당시 난무하던 에자나이카(좋지않은가)라는 대규모 군중 소요사태가 각지에서 빈발하고 있었으므로 이걸 진압한다는 구실로 편제해서 내보낸 것이었다.]로 개칭하고 신병 200과 소총 500자루를 지원받아 코부성 입성을 위해 고슈 가도를 따라 3월 1일 출발한다. 그러나 험한 날씨를 비롯해 갑양진무대가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 신정부군이 한발 빠르게 코부성을 점령하자 부대 내에서 동요가 일어나 병력이 점차 도주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히지카타 토시조]]는 구원병 요청을 위해 에도로 돌아가고, [[곤도 이사미]]는 계속 진군하여 가쓰누마(勝沼)방면에 대포 2문과 병력을 전개한다. 곤도 이사미는 신정부 측에 사절을 보내 자신들은 치안유지를 위한 진무대에 지나지 않으며, 교전의 의도는 없다고 전하지만 신정부 측은 곧 이들의 정체가 신센구미이며, 오쿠보 쓰요시라는 진무대장의 정체가 곤도 이사미라는 것을 간파하고 즉각 공격을 개시한다. 신정부군이 전면에 토사-쿠와나 번병을 위치시켜 포격을 개시하고, 스와 번병은 숲을 통과해 좌익 배후를 치고, 다니 신베에(谷新兵衛)가 이끄는 토사번병 일부가 가시오 산을 돌아서 갑양진무대의 우익 배후를 치는 바람에 3월 6일 정오부터 2시간에 걸친 전투 끝에 갑양진무대는 참패, 에도로 도주하게 된다. 신선조를 갑양진무대로 개칭하고 파견한 데에는 막부의 온건파인 [[카츠 카이슈]]의 공작이라는 설이 있다. 과격파인 신선조가 에도성 무혈개성을 하려고 할 경우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기 때문에 가능한 한 멀리 보내놓으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 에도성 무혈개성 당시 과격파들은 육군봉행 [[오토리 게이스케]]처럼 막부군 주력을 이끌고 북방으로 도주하여 항전하거나, 우에노에 모여 신정부군과 결전을 벌이기도 했으므로 타당한 조치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편 이 전투에서 깨진 신센구미는 훗날 동북방으로 도주한 막부 잔당과 연합하여 최후까지 신정부에 항전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